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흔히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고등학생 시절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면 대학에 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누가 이 말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고약한 거짓말인 것 같습니다. 필자도 고등학생 때에 그 말을 듣고 잠을 5시간 잔 적이 있었는데, 고교시절 내내 오전에는 졸았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6시간을 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잠자는 시간 보다 못 자는 시간이 더 많은 날을 겪고, 잠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임상경험을 겪은 후에야 잠은 꼭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보통 7시간이나 8시간을 잡니다. 수면학 교과서에서 청소년기에 필요한 수면시간은 9시간에서 10시간으로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필자의 진료실에 두통으로 내원하는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새벽1시에 잠들어 아침7시에 깬다니, 수면시간이 6시간인 셈입니다.
실제로는 오히려 잠을 많이 자야 공부가 잘 됩니다. 공부를 한 후에 낮잠을 잠깐 자면 기억이 더 잘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 쓸데 없는 기억은 제거되고, 필요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도록 고착됩니다. 마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는 과정이나, RAM(Random Access Memory)으로부터 ROM(Read only memory)로 바뀌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잠을 많이 자면 창의력이 증가하는데, 아인슈타인 박사는 하루에 10시간을 잤다고 합니다. 잠은 단순히 두뇌가 지쳐서 몽롱해지는 수동적인 현상이 아니라, 두뇌가 어떤 목적을 위해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상태입니다. 잠을 자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너무 피곤하거나 영양이 부족하면, 뇌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여 잠을 못 이루게 됩니다.
잠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방법으로 진화과정에서 나타났는데, 양서류와 파충류는 잠자는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기온이 떨어지면 에너지 대사가 느려져서 잠과 비슷한 상태로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조류나 포유류는 체온이 일정하기 때문에 깨어 있는 동안에는 에너지기 계속 소모됩니다. 에너지는 먹이를 찾거나 포식자로 부터 도망갈 때 사용되어야 하는데, 먹이를 구할 수 없는 밤에 깨어 있으면서 서성인다면, 에너지만 낭비하고 포식자에게 발각될 위험만 증가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먹이를 구하지 않는 동안에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초식동물은 하루 종일 풀을 뜯어야 하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짧습니다. 코끼리, 말, 기린은 3-4시간 정도 서서 자는데, 적게 자는 대신에 깨어 있으면서 조는 시간이 많습니다. 만약, 사자에게 쫓기느라 잠자는 시간을 놓쳤다면, 그 이후에 더 많이 잡니다. 육식동물의 경우에는 고기가 영양가가 높기 때문에 적은 양을 먹어도 됩니다. 사자는 1주일에 한 번 사냥을 하여 식사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만 잡니다. 고양이는 하루 12시간을 잡니다. 쥐와 같이 몸집이 작은 동물은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에 14시간 잡니다. 많이 자고 적게 먹는 동물들도 있는데, 영양가 없는 유칼립투스 잎만 먹고 하루 20시간을 자는 코알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시기에는 아예 수 주 동안 동면을 하여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돌고래는 자주 수면으로 나가서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두뇌의 한 쪽씩 2시간마다 교대로 잠을 잡니다. 잠을 자는 쪽의 눈은 감겨있고 지느러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포식자를 경계하기 위해 잠을 띄엄띄엄 자지만, 인간은 원시시대를 지나 안전이 확보되면서 부터 잠을 한꺼번에 몰아서 잠자게 되었습니다. 원시인들은 해가 지면 잠들고 해가 뜨면 잠이 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2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깊이 자지는 않고, 초저녁에는 얕게 자다가 한 밤중에 깊게 잤을 것입니다. 전기조명이 대중화되고 부터는 잠자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에 더 깊이 자게 되어, 현대인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반 정도입니다.
성인은 적어도 7시간을, 청소년들은 8-9시간은 자야 합니다. 잠을 충분히 자면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져서 성장기에는 키가 크고, 중장년기에는 세포의 재생이 촉진되어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수면시간이 6시간 보다 짧거나 8시간 보다 길면 수명이 짧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이보다 적게 자는 사람은 우울증이나 치매가 있거나, 이보다 많이 자는 사람은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학업이나 직장일로 이보다 적게 잔다면, 건강에 악영향을 주어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잠을 충분히 못 자면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서, 대사가 증가하지만 체온이 내려가고, 식욕이 증가하지만 체중이 빠집니다.
잠을 잘 자려면, 저녁에 조명을 어둡게 하고 활동을 적게 하고 식사를 간소하게 해야 합니다. 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올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대사가 올라가서 잠이 안 옵니다. 대사가 아주 느린 사람은 아침에 커피를 마셔도 잠이 안 올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이나 지방이 많은 식사와 엽록소가 많은 식사는 잠을 잘 오게 하지만, 단백질은 대사를 올리기 때문에 방해가 됩니다. 저녁에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고 운전을 하여 집으로 돌아온 후에 잠이 잘 안 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만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을 자면서 성장하고, 회복하고, 기억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합니다. 잠은 깨어있는 시간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